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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평화를 위해서는...

 최근의 북한 압록강의 홍수에 대해 남한 당국이 적십자사를 통해 인도적 지원을 제의했다.  그동안의 대결적 자세와는 다소 다른 행동이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의 응답은 없고, 보도에 대한 불만만 말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는 대결하는 자세가 옳다고 믿는 모양이다. 힘으로 이기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면 미국에 간청을 해서라도 핵무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힘의 논리의 한계가 있다. 


그럼 북한의 전체주의적 독재형태의 체제를 인정하고 교류를 통해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주민들은 이미 남한이 잘 살고 자유스러운 세상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유튜브나 방송을 통해 이미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외부와 접촉을 늘릴 수록 그러한 정보는 더욱 많이 북한에게 알려진다. 구태여 북한이 지극히 싫어하는 대북 전단 살포가 아니라도 방법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전단 살포를 고집하고 이를 밀고 나가려는 고집을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상당히 나쁜 정책당국자들이다. 


체육교류나 문화교류, 나아가 경제교류가 그들을 더 열리게 할 것이다. 초기에는 다소 수헤적인 교류가 이루질 수 밖에 없다. 워낙 차이가 나는 경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투자라 생각해야 한다. 북한 하나 통일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대만을 통일한다고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중공을 이길 수 없다. 


언제 북한이 변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도와 강원도에 원전을 세우는 것도 미래를 대비한 투자이다. 북한지역의 전력공급을 위해서 말이다. 단지 발전소 보호 장치를 위한 투자가 이루져야할 것이다. 지금은 유럽에서도 원자력에너지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는 시기이다. 소형모둘 원전시설을 울릉도에 세우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의 하나이다.  


진정 시기를 잘 이용한 독일의 통일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남북한의 대치정국이 교류확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해리스는 어떤 정책을 쓸 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남한이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북한을 제재 위주로 대한 미국의 정책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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