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Posts

Gogurye etait etabli en Europe Nord

Cet article est le resultat de trois mois de travail depuis Septembre 2023. Je pouvais completer grace aux meteriaux de Youtube je remercie pour leur publications. En meme temps, cet article represente mes idees de l'histoire Coreenne a partir de l'age neolithique. Bon courage de lire cet article long! L'article de l'adressse suivante(ecrit en Coreen):  Titre :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이 고구려를 개국한 홀본지역은 어디인가? https://lainfos.tistory.com/419
Recent posts

Ancient Three Hans (Chosuns) were not in East-North Asia, but in Europe

According to Old Ancient Historical Documents, saying WhanDanGogui, they suppose that Old Three Hans (Three Chosuns) were in East North Asia. Most of Korean Historians support this geographic location. But, when I analyse the contents of this document, I found that East North Asia could not satisfy the geological conditions this document was saying about. Further, I can find this geological condions satisfied by European location, which is identical to what I have studied since 10 years ago.  You can see the detail of my studies about it in the following two addresses you can click. They are written in Korean. Suivant la documentation d'histoire ancienne de la trois Corees, c'est a dire, Whandangogui, la pluspart des historians Coreens suppose que les Trois Hans (Chosuns) s'etait situes a l'Est-Nord de l'Asie. Mais, par mes etudes, il semble que les Trois Hans (Chosuns) s'etait situes en Europe.  En plus, Je trouve les epreuves identitiques a la conclusion de me

Yaksu river was in Sweden (약수는 스웨덴에 있었다)

  I. 머리말 지난 번 글에서 약수가 아시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리적 요건을 근거로 추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면 실제 약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아래 지난 번 글에서 살펴 보았던 약수에 대한 자료를 재게한다. "같은 3세 가륵 단군조에 그런 흉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바로 “가륵 단군 6년 (B.C 2177, 갑진) 열양(列陽)의 욕살 색정(索靖)에게 명해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갇혀있도록 했다. 뒤에 이를 용서하시고 곧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시조(匈奴之祖)가 됐다”는 기록이다. ..... 욕살은 한 지방을 다스리는 벼슬로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급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흉노를 다스리던 색정(索靖)의 후손으로 보이는 색불루(索弗婁)가 흉노의 우현왕이 됐다가 기원전 1286년 정변을 일으켜 조선의 22대 단군으로 즉위하고 그 후손들이 제위를 이어간다. 이렇듯 흉노는 조선의 제후인 동시에 조선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사기 흉노열전’에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의 묘예인 순유다. 요순시대 있던 산융과 험윤과 훈죽이 북쪽을 살면서 목축하면서 떠돌아 다녔다”는 기록과 ‘산해경 대황북경’에 “견융과 하나라 사람은 같은 조상으로 모두 황제로부터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하나라 시조는 순임금 때 우사공(禹司空)으로 동이족이었다.  청나라 때 왕국유가 지은 ‘귀방·곤이·험윤고’에 “흉노의 명칭이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은나라 때는 귀방(鬼方)·곤의(昆夷)·훈죽(獯鬻), 주나라 때는 험윤(獫狁), 춘추시기에는 융(戎)·적(狄)으로, 전국시기에는 호(胡)로 이 모두 후세에서 말하는 소위 흉노다”고 설명돼 있다..... 5세 대음단군 10년(B.C 1652, 기축) 기록에 “단제께서 서쪽으로 약수로 가시더니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철 및 고유를 채취하도록 했다 (帝西幸弱手命臣智禹粟採金鐵及膏油)”는 기록에서 약수는 단군이 다스리던 땅이었으며 조선의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 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