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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여...

 오늘이 성탄절이다. 그래서 3년여만에 다니던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장을 두고 설교를 하셨다.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지금의 세상은 전쟁과 편가르기로 혼탁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미국이 변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만이 잘 살겠다고 나만이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온 세상이 다 같이 잘 살고 평화롭게 사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은 로마를 등에 업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습의 이스라엘로 보인다. 나만이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이 공존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사랑의 교혼을 되새겨야 한다. 지금의 이스라엘 모습은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인들을 학대하는 바빌론의 모습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들도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영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구할 때이다. 더 이상 소모적인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를 요구하는 무리한 일을 멈춰야 한다. 


미국의 태도도 변해야 한다. 자국내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없애기 위해서는 더 이상 대외전쟁에 지출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지탄하는 이스라엘 -하마스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멈춰야 한다. 논리도 윤리도 져버린 가치없는 전쟁 지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북한과의 대결정책 등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은 매우 가치가 있는 공약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이 트럼프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이것이 핵심인지 모른다. 바이든은 노욕을 계속 부리려면 이러한 핵심적인 공약이 필요하다. 진정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팽창정책, 일방적인 제재정책의 모습을 버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장래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달라는 영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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