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시기에 가륵단군이 BC 2177년 행실이 좋지 않은 요동태수 색정을 약수에 유배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용서하시고 그 땅에 제후로 봉하니 이가 곧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따라서 약수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는 의미를 가진다. 단군조선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흉노가 출발한 지역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러한 약수가 어디인가를 알아 보자. 여러 문헌과 재야 사학자분들의 자료를 보면, 약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약수는 부여와 읍루의 북쪽에 있으며, 동북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 간다. 그리고 읍루는 식신, 숙신이라고도 불리는데, 매우 추운지방에 있으며, 부여의 동쪽에 있으며, 그 동쪽으로 대해와 닿아 있다. 즉 읍루는 동쪽으로 큰 바다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음단군은 BC 1652년 서쪽으로 약수로 가서 금철과 고유를 구하여 이용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후한서 동이전>에 “부여국 북쪽에 약수가 있다”와 <진서 사이전>에 “읍루국 동변에 대해가 있고 북쪽 끝이 약수다” 는 문구가 그것이다. 또한 <호위우공추지(胡渭禹贡锥指)에 “약수는 연택에서 동북류해 부여를 지나 읍루의 북쪽 경계를 돌아 동해로 들어간다(似弱水自居延泽东北流,厯夫余挹娄之北境而归于东海)” 고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 (자료 : 약수 남쪽에 자리 잡았던 부여와 읍루,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흉노의 조상인 색정의 유배지였다가 훗날 사면돼 제후로 봉해지며 봉지로 받은 약수(弱水)는 ‘ 단군세기’에 “5세 대음단군 10년(B.C 1652년) 기축년 단제께서 서쪽으로 약수로 가시더니 신지 우속에게 금철 및 고유를 채취하도록 명했다” 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서쪽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약수, 단군조선의 서쪽 감숙성을 흐르는 강, 성현식, 스카이데일리) 1. 제도 사학계의 부여 및 읍루 추정 위치 반도사관에 의해 동만주에 그려진 부여와 읍루. [사진=필자(=성현식) 제공]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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