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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g Dynasty of China was bordered at North Sea

La Chine s'etait situee au bord de la Mer du Nord et de la mer de l'Ouest, et partialement de la mer du Sud, comme la France.


북해에 접한 중국의 당(唐)나라


최근 당나라의 '안록산 사사명의 난'(755-763)을 연구하고 있는데, '안사의 난' 중에 당나라는 '북해절도사'를 임명한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해태수'(하란진명)도 임명된 것으로 보면 당나라가 북해에 접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바이칼호를 북해로 본다는 주장을 하나, 당시 당나라는 그 지역까지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북해절도사나, 북해 태수는 당나라 영역에 임명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안사의 난을 평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회흘이란 위구르제국은 동돌궐이 망한 후 세워진 나라라 한다. 즉 북해위의 위치에 있는 나라인 것이다. 문무님은 북해 위에 나라가 또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북해가 바다가 아닌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필자가 추정하는 북유럽을 고려하면 북해위에 돌궐이나 회흘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두만강이 북해로 흐른다는 기록을 이성계의 조상, 이행리의 이야기에서 찾았다. (아래 글 참조)

https://blog.naver.com/lainfos/222968113723


요동에 있는 조선의 두만강이 북해에 이른다는 것은, 요서에 있는 중국이 북해에 접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즉 같은 북해를 말하지 않나 한다.

필자는 중국이 또한 서해에 접했다고 추정했다. 북위의 효문제가 토욕혼의 왕에게 '서해개국공'이라는 직책을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서해에 접하고 북해에 접했다는 증거를 찾은 셈이다. (아래 글 참조)

https://blog.naver.com/lainfos/222342244934


그런데, 후한시기에 일본의 대마도는 대방군의 남쪽 바다 7-8천리에 떨어져 있다고 한 기록이 나온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blog.naver.com/lainfos/223198289088


이 기록은 중국의 일부 해안이 남쪽 바다에 접한 것을 말한다고 판단한다. 즉 중국은 서해, 북해에 접해 있고, 일부가 남해에 접한 모습이 된다. 필자가 추정하는 프랑스지역과 완벽히 일치하는 지형이다.

그러나 현 중공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현재의 중공은 북해, 서해, 남해가 없고, 유일하게 동지나해만 있을 뿐이다. 역사 기록에서 요동땅은 많이 언급되었어도, 중국사에서 동해라는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요동쪽에 있던 고구려나 신라에서 동해가 언급된다. 즉 지금의 중공지역이 중국 역사의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중공이 주장하는 중국의 역사는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중공지역을 전제로 한 중국역사에 매몰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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